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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지명은 “제차파의(齊次巴衣)”로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등장한다. 제차(齊次)는 제계(齊戒)로 제사를 말하며 파의(巴衣)는 ‘바위’를 뜻하는 고대 언어로 즉 ‘제사를 드리는 바위’이다. 한성 백제 때 백제의 왕이 허가바위 굴속에서 토지 신에게 풍요로움을 기원하며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이후 제차파의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강서구는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점령했던 지역으로 검포현(黔浦縣)과 제차파의평회파(齊次巴衣平淮把)·동자홀(童子忽)·수이홀현(首爾忽縣)의 5개 현을 두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검포를 김포현(金浦縣)으로 고쳐 장제군(長堤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양광도(楊廣道)에 속하여 수주(樹州)주 01)에 딸렸으며 1391년(공양왕 3)에 경기를 좌·우도로 나눌 때 양천현을 제외한 나머지 현은 경기우도에 편입되었다.

1414년(태종 14) 김포와 양천(陽川) 두 현을 합하여 금양현(衿陽縣)이라 하였다. 이 해 10월에 두 현을 다시 나눌 때 김포는 부평부(富平府)에 편입되었다가 1416년에 김포현으로 복귀되었다. 1632년(인조 10)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 김포·통진(通津)·양천(陽川)의 3개 군이 되었는데 강서구 지역은 김포군과 부천시 북단의 일부였다. 특히 양천고성지는 궁산에 위치하는 약 29,370㎡ 넓이의 옛 성터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역사의 흐름에 비추어볼 때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성으로 조선 성종 때까지 218m의 요새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교육문화를 주도해온 문화유산으로 유가(儒家)의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와 지방 향리들의 자제를 교육시키던 기관인 양천향교가 있다.

1914년 일제가 전국의 부·군·면을 통폐합할 때 통진·양천의 2군은 김포군으로 병합되었다.

1963년 경기도 김포군에서 서울로 편입된 이래 영등포구에 속했으나 1977년 강서구로 분리·신설되었다. 중심지역은 화곡동으로, 서울시가 부도심의 하나로 개발한 곳이다. 화곡동·가양동 일대에는 대단위 주택 부지가 개발되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안양천 주변의 염창동·목동도 거의 아파트·연립주택 등 공동주택 단지가 되었다. 강서구출장안마 는 날로 증가하는 인구의 분산과 서울특별시 남서부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계획되었던 목동신시가지계획이 마무리되자 1988년 목동·신정동·신월동의 15개 행정동을 따로 관할하는 양천구를 분구 신설하였다. 김포공항을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은 아직 농경지가 남아 있어 서울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이었으나 대규모 아파트가 조성되어 주택지구를 이루고 있다. 관할구역은 염창동, 등촌1∼3동, 화곡본동, 화곡1∼8동, 가양1∼3동, 발산1∼2동, 공항동, 방화1∼3동의 20개 동이다. 법정동으로 마곡동·과해동·내발산동·외발산동·오곡동·오쇠동이 있다.